리스본 대지진이 신 대신 과학을 찾게 한 문명의 청소

재난이 촉발한 ‘문명의 거대한 청소’와 이성의 승리

하지만 진짜 게임체인저는 여기서부터입니다. 이 대재난이 역설적으로 문명의 거대한 청소부 역할을 했다는 겁니다. 마치 시스템을 재부팅하듯, 기존의 낡은 계층과 관념을 강제로 종료시켰죠. 이 한 가지만 바꿨는데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 거예요.

1. 흑사병, 중세 봉건제를 무너뜨리다 (노동력 희귀의 힘)

흑사병 이후, 유럽은 극심한 노동력 부족을 겪었습니다. 노동력이 귀해지자 살아남은 사람들은 당연히 더 나은 처우와 자유를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. 농노들은 봉건 영주에게 묶여있던 굴레를 벗어던지고 도시로 향하거나 토지 소유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했죠. 이것은 중세 봉건제가 무너지는 결정적인 불씨가 되었을 뿐 아니라, 잉여 인구와 착취 구조를 기반으로 했던 사회가 경제적 혁명을 통해 근대적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초석을 놓았습니다.

질병은 파괴만 가져온 것이 아니라, 노동력의 희소성 = 인간 가치의 상승이라는 가장 강력한 사회적 피드백을 제공했습니다. 재앙 속에서 공중 보건의 개념과 노동자의 권리 시스템이 싹튼 거죠.

2. 리스본 대지진, 신 대신 과학을 찾게 하다 (이성적 문제 인식)

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은 1755년 리스본 대지진이었습니다. 18세기 유럽의 지성계를 뒤흔든 이 사건은 재난을 ‘운명’이나 ‘신의 뜻’으로만 치부하던 기존 관념에 정면으로 도전했습니다.

칸트, 볼테르 같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이 지진을 계기로 재난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‘해결해야 할 과학적 문제’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. 재난을 신의 영역에서 인간의 이성의 영역으로 가져온 결과, 우리는 현대적인 재난 대비 시스템, 보험, 도시 계획 같은 합리적인 대응 방식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. 정말 막막했는데, 그 막막함이 오히려 거대한 혁신의 기폭제가 되었던 겁니다.

결론: 재난의 피드백은 가장 비싼 매뉴얼

결국 세계사 속 대재난의 핵심은 바로 이거였어요. 재난은 우리에게 ‘인간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가’에 대한 가장 비싸고 중요한 피드백을 제공합니다.

• 흑사병: 공중 보건, 노동자의 권리라는 근대적 시스템 변화를 강제함.
• 대지진: 이성적 사고, 과학적 도시 계획이라는 인식의 혁명을 유발함.